고양이 쉼터에는 저마다 많은 사연이 있는 고양이들이 모여
제각기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곳 「보호소 이야기」에 사연이 올라오는 아이들은 특히 더 힘들게 인연을 맺은 고양이들입니다.
'황금이'도 그렇습니다.
2019년 3월 8일 협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에서...
뒷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고양이가 있는데 구조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수성구에 하반신 마비 고양이가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경계가 너무 심해 잡을 수가 없어서 구조가 어렵다는 전화를 비슷한 시기에 두 번 정도 받은 기억이 있었습니다.
걷지를 못해 두 손으로 끌고 다니면서 지속적으로 마을 사람들 눈에는 띄는데도 구조나 포획이 어렵다고...
그 고양이가 부상을 당했어도 얼마나 조심성이 강하고 사람을 경계하는 완벽한 야생 길고양이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눈에도 잘 띄지 않는 곳에 숨고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에만 움직이는..
'황금이' 구조 요청 전화를 주신 분도 회사 앞 주차장 CCTV에 잡힌 모습을 적절한 시기에 보고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면 아마 구조는 어렵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앞발로만 기어 다니면서도 오랫동안 숨어서 기다렸다가 사람의 인기척이 사라졌을 때 재빨리 콘테이너 박스 밑으로 숨는 조심성...
주차장 CCTV에 찍히지 않았다면 아무도 저 컨테이너 속에 고양이가 있는지 알지 못했을 겁니다.
마침 구조 요청자는 영상을 보고 고양이가 숨은 입구를 벽돌로 막은 후 협회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좁은 공간에 숨은 부상 당한 길고양이...
협회는 특별히 구조팀도 없고, 고질적인 재정 적자에, 쉼터는 항상 구조 동물들로 만원이라 더 이상 구조는 이제 힘들다 힘들다 말들 하지만...
저런 상태의 고양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쉼터 직원이 직접 나가서라도 데려와야겠다는데 의견을 모아 일단 구조를 시작하고 보았습니다.
콘테이너 박스 구멍에 들어간 고양이는
뒤쪽으로 달리 빠져나갈 공간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제는 덫으로 들어오느냐 마느냐 시간 싸움이었습니다.
한가지 문제는 덫과 콘테이너 구멍 사이 약간 틈새가 있다는 것. 무거운 벽돌로 막아 놓았지만 혹시 그곳으로 도망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
고양이가 이것이 덫이란 걸 인식하고 위험하니까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 결심하면 쉽지 않은 구조가 될 걸로 예상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4시에 설치한 덫은 해가 지고 새벽 1시가 되어도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 설치된 덫과 덫에 부착된 폰 카메라로 보이는 내부(적외선)
밤이 깊어도 조용하기만 한 콘테이너 박스 앞.
덫 앞에 설치한 적외선 폰 카메라 화면에선, 눈치를 챘는지 전혀 한치의 미동도 없는 고양이가 숨어 있는 모습이 뚜렸한데...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넣어 놓아도, 다쳐서 식욕이 없는 것인지, 경계가 심해 들어가지 않을 결심인지..
덫 안에 음식물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거 힘들겠는데, 저러다 가려놓은 덫 입구 틈새로 사람이 안 보는 사이 빠져나간다면...'
새벽 4시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덫에 고양이가 한 마리 걸리긴 하였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밤샘 철야를 하던지라 곧바로 달려가 보았지만...
아쉽게도 구조하고자 하는 부상 당한 고양이가 아닌 건강한 다른 고양이가 옆 칸 콘테이너 구멍에서 들어와 덫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ㅜㅜ
'이런!'
.
.
.
.
구조하고자 마음먹은 부상당한 고양이는 그대로 동이 틀 때까지 한치의 미동도 없이 경계를 풀지 않았습니다.
덫을 다시 재설치하고 기다렸지만...
다음 날 아침 10시경 밝아진 바깥 햇살이 가려놓은 덫 입구로 흘러 들어간 탓인지,
고양이는 가려놓은 벽돌을 모두 무너뜨리고 힘겹게 좁은 틈새를 통해 밖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낮이 밝아 덫 철수를 결심하고 달려가던 5분 사이 벌어진 일이라...(구멍을 막고 밤에 다시 재설치 할 예정이었습니다.)
구조를 진행 중이었던 직원과 구조작업을 도와주던 봉사자, 구조 요청자는 모두 허탈하기 짝이 없었지만...
부상당한 고양이가 밤새 굶고 도망간다면 얼마나 가겠냐는 생각으로 그 주변을 뒤져서 결국 고양이를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고양이가 자신을 쫒는 구조자들을 피해 기어 기어 도망간 곳은 주차장 자동차 속..
자동차 밑으로 미쳐 숨지 못한 고양이 다리가 빼꼼 보입니다.
자동차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까닭에 어쩔 수 없이 119 구조대에 요청을 하여
소방대원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날 지체 없이 달려와 주신 범물 119안전센터 소방위 조융식님, 소방장 한광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부터 사진들은 자동차 속으로 들어간 고양이의 구조 과정입니다.
포획 성공!!
소방관 아저씨들 만세!!
사실 이날 하룻밤을 꼬박 세고도,
설치한 덫 옆으로 있는 힘껏 빠져나가는 고양이를 눈앞에서 놓친 상황이라..
피곤함과 실망감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오로지
'지금 이 고양이를 잡지 못한다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을 것이다. 저 아이는 앞으로 두 번 다시 덫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이대로는 얼마 살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안으로 구해야 해'
라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구조한 고양이의 이름은 동네의 이름을 따서 '황금이'라고 지었습니다.'
'황금이'는
구조도 쉽지 않았지만 치료과정은 더욱 더 힘들었습니다.
이미 부러져서 굳어버린 척추뼈
긴 시간 땅을 끌고 다니면서 염증이 생긴 생식기, 방광, 부러진 골반뼈,
마취 없이 이동장 채 찍은 엑스레이..
(4개의 나사는 이동장의 나사입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사람을 너무나 경계 하는 태도였습니다.
치료해 주고자 하는 사람의 손길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타고난 야생 길고양이였습니다. 맨정신에 몸에 손 하나 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뭐...
야생 고양이들이랑 함께 한지 이제 22년째...
저보다 더 지독한 녀석도 순화시켜 본 적이 있는 이곳 집사는 인정사정없이 이 녀석과도 친해져 보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수술을 하기에는 많이 늦은 상태. 척추 골절, 골반뼈 골절, 다친 방광에서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피오줌.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반신 마비로 통증은 비교적 적게 느끼는 것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황금이의 회복 과정은 자세히 설명하자면 너무나 길고 긴 글이 될 것이기에 간단히 적도록 하겠습니다.
부러진 척추뼈는 하반신 영구 장애입니다. 평생 걷지 못합니다.
하지만...
비록 걷지 못해도 쉼터에는 건강하게 잘 지내는 장애묘들이 꽤 많습니다.
회복하여 건강하기만 하다면야 이런 장애 따위..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집사의 집념과 정성, 오랜 경험, 그리고 도움 주시는 실력 있는 의사 선생님의 솜씨 덕분에 황금이는 그다지 배변, 배뇨 문제없이 천천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쉽지 않게 아주 천천히 말입니다.
'황금이'는 분명 야생 고양이입니다.
아마 저 정도 다치지 않았다면 절대 사람이 만질 수 없는 야생 길고양이였습니다.
(지금에서야 말합니다. 길고양이 였다고... 다 옛날 말이죠~ 아♪ 엣날이여~)
회복하는 과정에서 집사의 마음을 알아주고 보살필 수 있게 허락해 줘서...참...녀석 고마울 따름입니다.
현재 '황금이'는 협회장님 댁에서 임보 중에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가끔씩 사람을 두려워해 간혹 공격성을 보일 때도 있지만...
이제는 거의 평온한 반 집고양이로 변신했습니다.
츄르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반 집고양이...
하지만 아직 무늬만 집고양이인 '황금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츄르 섞인 밥을 철없는 어린 고양이들이 무단 침입하여 대신 먹어치워도...
'그래 많이들 먹어라'
황금이는 의젓한 수컷 고양이의 아량으로 허락해 줍니다.
하지만,
' 헉 뭐냐..또 웬 카메라를 들이데..'
집사의 카메라 인기척엔 바로 태도 돌변!
눈빛부터 달라지는 녀석.
이렇게 어린 고양이들에겐 무한 양보를 하는 다정한 수컷이면서
'뭐냐 이 느낌!'
뭔가 등 뒤에서 다가가는 집사의 카메라 인기척이 느껴지면,
'또 찍고 있니..?'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황금이'
▲ 구조 이튿날 '황금이'
막 구조했을 당시
그 두려움과 고통에 떨던 무시무시 하던 눈빛에 비하면 지금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해진 황금이.
부디 이곳 쉼터에서 행복하게 천수를 누려다오.
예전 걸을 수 있었을 때의 배고픈 자유가 그리울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단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렴 황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