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6일자 경향신문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싱어교수 “생명은 신성하지만 안락사·낙태도 필요”
입력: 2007년 05월 16일 18:02:57
“인간의 생명만이 무조건 존엄하다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질에 기초한 윤리를 중요시해야 한다. 따라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고통스러울 때 안락사·낙태 등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의료발전 등 공공이익을 위해 인간배아복제를 허용한 한국의 결정도 옳다고 본다.”
한국철학회가 마련한 다산기념철학강좌 참석차 방한한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석좌교수(61)는 16일 오전 한국프레센터에서 ‘이 시대에 윤리적으로 살아가기’란 주제의 강연을 갖고 이같이 말했다. 응용 윤리학의 거장인 싱어 교수는 동물해방 운동과 저개발국의 빈곤 구제를 위한 국제 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안락사와 낙태 등 생명윤리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싱어 교수는 ‘생명의 신성성’보다 ‘생명의 질, 삶의 질’에 기초한 윤리를 주장했다. 의사 결정 능력이 있는 환자가 자신의 삶이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경우 환자의 의지를 막아서는 안되며 장애아의 낙태 역시 부모의 고통을 생각할 때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동물이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것에 반대하며 동물해방론을 주장해온 싱어 교수는 “동물 역시 인간처럼 고통을 느낀다. 동물이 인간종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물의 이해관계를 무시하는 논리는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나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인간뿐 아니라 다른 동물도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익 동등고려의 원칙’에 따라 동물에게도 도덕적 지위를 부여,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싱어 교수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와 빈곤 문제에 대해서도 주장을 펼쳤다. 세계적인 환경오염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염에 대한 책임이 크고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선진국이 기부 등을 통해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나 기업차원에서도 세계 빈곤문제나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절차 등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서 “개인 차원에서 빈곤국에 기부하거나 동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거나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동물해방, 빈곤구제, 생명윤리 문제 등은 모두 하나로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피터 싱어 교수는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수입의 25%를 세계 구호 단체 등에 기부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대에서 ‘윤리의 본질에 대한 이해’란 주제로 강의한 피터 싱어 교수는 18일 계명대 강의를 포함, 총 네 차례에 걸쳐 다산기념철학강좌를 열 예정이다.
〈글 임영주·사진 이상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