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오종택 기자
"내 빛이 되어준 토람이, 아직도 네가 그립다"
신년 특집 TV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내 앞에서 깜박거리던 빛이 사라지는구나,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를 향해 열려있던 문이 쿵 하고 닫기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토람이(사진)'의 죽음을 회상하는 전숙연(47)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2001년 8월 병사(病死)한 토람이를 땅에 묻었다. 해바라기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산 지 4년 만이었다. 그 때 전씨는 이렇게 울먹였다.
"토람아, 잘 가. 너는 아마 나의 아버지였을거야. 나를 지켜주기 위해 토람이란 이름으로 환생했던거야. 다음 생에선 내가 너를 지켜줄게." 전씨는 시각장애인이고, 토람이는 뉴질랜드산 골든리트리버 종 안내견이었다. 토람이는 전씨에게 눈 이상이 되어주었다. "토람이는 내 아들이었고,아버지였고, 또 남편이었다"는 전씨는 최근 토람이와 얽힌 추억을 담은 에세이집 '내 사랑 토람이'(랜덤하우스중앙)를 펴냈다. 이들의 얘기는 신년 특집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7일 밤 SBS-TV를 통해 방영된다.
이전의 전씨는 1남1녀를 둔 김해 진영의 평범한 과수원 농부의 아내였다. 1992년 6월 농약통 폭발사고로 양쪽 시력을 모두 잃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200여번의 마취와 수술로 점철된 3년여를 보낸 뒤 전씨는 홀로 서울 수유리에 자취집을 구했다. 96년 가을이었다.
"지나친 가족의 보살핌은 오히려 내 손으로 밥 한 번 지어먹고싶다, 나 혼자 화장실 한 번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서기를 시도했던 거지요." 전씨는 한 복지재단에서 기초재활교육을 받았다. 이듬해엔 한빛맹아학교와 단국대 대학원 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무상으로 대여한 토람이를 만난 건 그 직후였다.
이후 전씨가 맹아학교를 졸업하기까지 3년간 둘은 통학에 1시간 이상 걸리는 대학원을 함께 다녔고, 동네 시장통을 함께 누볐다. 그는 "못갈 데가 없었다"고 했다. 제주도 한라산까지 등반했다고 한다.
"흰 지팡이를 짚고 걸으면 (정보가) 평면적이 돼요. 그래서 낯선 길을 내딛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요. 그 용기를 불어넣어준 게 토람입니다. 덕분에 입체적으로 살 수 있었어요. 토람이와 살면서는 현관 문을 잠그지 않아도 무섭지 않을 만큼 의지가 됐죠." 토람이와 함께 한 기간에 전씨를 많은 것을 이뤄냈다.
99년에 석사모를 썼다. 특수교사 자격증도 땄다. 토람이도 석사모를 나눠 썼다.2000년엔 맹아학교를 졸업했다. 곧바로 모교 교사로 채용됐다. 그 뒤 가족도 서울로 올라와 전씨와 함께 살게 됐다.
"가장 슬펐던 때가 언제냐"고 물었을 때 전씨는 주저없이 "토람이가 죽었을 때"라고 했다. "실명(失明)했을 때가 아니었느냐"고 되묻자 그는 고개를 모로 저으며 말없이 새 안내견 '대양이'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고정애 기자
▲ 전숙연씨가 새 안내견 대양이를 안고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전 안내견이자 전씨가 쓴 책의 주인공인 토람이
사진=오종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