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한국동물보호협회

며칠 전 일이다. 벼를 벤다고 해서 한낮이 다 되어 나가 보았다. 10여년 전만 해도 온 식구가 나가서 일꾼들과 함께 낫으로 벼를 베고,묶고,나르고 하면서 점심은 논바닥에 둘러앉아 따스한 햇볕 아래 메뚜기가 톡톡 튀는 소리를 들으면서 먹었는데, 요즘은 기계가 다 하니 벼를 거두는 논에는 기계를 부릴 사람 하나밖에 없다.

나는 큰아들 정우가 마치 이발사가 머리털을 깍는 것처럼 기계로 논바닥의 벼를 깍아 나가는 것을 높은 언덕에 앉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올해는 여름 중간부터 잇따라 비가오고 구름이 하늘을 덮어, 가을에 단풍이 들 때까지 해가 난 날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추워져 얼음이 두껍게 얼었다. 그래서 채 여물지도 못한 벼가 그대로 말라서 빛깔도 푸르죽죽하게 되었다.

 개 준다고 병아리 삶는 사람들

 날씨가 해마다 괴상하게 되어 가는데 이대로 가면 몇 해 뒤에는 어찌될까? 그런데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하늘 걱정을 하면 사람들은 `걱정도 팔자'라고 비웃는다. 사람의 목숨 줄이 하늘에  달려 있는데, 그 목숨 줄을 스스로 끊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나는 예언자도 과학자도 아니지만 하늘이 달라져 가는 것을 알고 있다.

벼 베는 기계가 논바닥을 돌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마른 바랭이풀을 깔고 앉아 날씨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 자꾸 `삐약삐약'  하는 병아리 소리가 들려왔다. 논 위쪽 오리장에 함께 있는 닭이 알을 품는다더니 이제 깨어 났구나 싶었다.

이 추위에 어떻게 키우려고 깠나? 그런데 점심때가 되어 기계에서 내려온 정우한테 병아리 걱정을 했더니 뜻 밖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 아침 논에 왔더니 어디서 병아리 소리가 자꾸 나요. 소리 따라 갔더니 도랑 바닥 풀 속에 병아리가 여러 마리 있는데,우리 병아리가 아니라요. 그런데 저쪽 언덕 위에서도 병아리 소리가 나서 올라가 봤더니 바로 개 기르는 집에서 병아리를 상자로 사 놨어요.

물어보니 삶아서 개 먹잇감으로 주려고 사 왔다고 해요. 500 마리씩 들어 있는 상자를 24 상자 샀다니까 모두 1만2000마리지요. 그 병아리 상자를 차에서 내리고 옮기고 할 때 병아리들이 더러 튀어 나오고 떨어지고 했겠지요. 그 중에서 벼랑으로 굴러 떨어진 것도 있어서 밤새도록 마른 풀속에 들어가 죽지 않고 견딘 겁니다. 글쎄 아무리 돈벌이가 좋다지만 어디 이럴 수가 있나 싶어 막바고 그 개집 주인인 젊은이한테 내 생각을 말했더니 대답이 이래됴. "약한 짐승이 강한짐승에게 잡아 먹히는 것은 당연하다고요."  기가 막혀 더 말을 안 하고 왔어요."

다음 날 벼를 거두는데 또 나가서 보다가 쉴 참에 기계에서 내려온 정우한테서 어제 그 병아리뒷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아침 닭장에 갔더니 병아리 두 마리가 죽어 있고, 어미닭은 보이지 않았어요. 너구리가물고 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논으로 가는데 도랑 바닥에 어미닭이 있었어요. 거기서 병아리를 여러 마리 품고 있잖아요. 하, 그놈이 참! 밤중에 닭장에서 제 새낄 품고 있는데,어디서 자꾸 병아리 우는 소리가 나니까 그만 그 소리나는 데로 가서 도랑 바닥에 울고 있는 양계장 병아리들을 모두 품어 안고 밤을 새운 거지요. 그래서 정작 제 새끼는 영하로 내려간 추위에 얼어죽었어요. 할 수 없이 어미닭과 그 병아리들을 안고 와서 닭장에 넣어 뒀어요."

 생명 귀한 줄 모르니 어찌할까

 나는 이 말을 듣고 사람보다 닭이나 개와 같은 짐승들이 얼마나 더 높고 아름다운 자리에 있는가를 새삼 생각했다.

가 아주 어렸을 때 닭 둥우리에서 어미닭이 품고 있는 갓 깨어난 병아리를 꺼내서 두 손으로 안아 보고 그 보드랍고 귀여운 모습에 얼마나 놀라고 마음이 사로잡혔는지모른다. 이 세상에서 생명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만난 것이 그 병아리를 본 순간이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생명이 존엄하다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말만으로는 결코 안 된다. 다만 그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런데 병아리를 수백 수천마리씩 한꺼번에 가마솥에 넣어 끓이는 짓을 예사로 하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물려주겠는가? 사람의 앞날이 무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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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 오덕- 평생 우리말 살리기에 힘을 쏟아왔으며 1999년 건강을 돌보기 위해 장남이 사는 충북 충주 근처 무너미 마을로 옮겨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동시집 "개구리 울던 마을"    평론집 "우리 글 바로 쓰기" 등의 저서를 냈다. 최근 자연과 사람에 대한 수필집 " 나무처럼 산처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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