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에 버려진 고양이, 쇠목걸이가 살가죽에 파고들어 살이 썩은 개 등 사람이 버리고 학대해 온통 상처투성이인 동물들이
충북 보은의 한 동물보호소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은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동물은 장난감처럼
사람이 갖고 노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은 동물보호소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풍경을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가을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던 지난 29일. 충청북도 보은군 수한면 항근산 자락에 자리 잡은 '보은 동물보호교육센터'에 새 손님이 도착했다. 맹인안내견으로
주로 활약하는 5살짜리 골든리트리버다.
대구 시내를 혼자 떠돌아다니다 동물구조원에게 발견돼 한 달간 대구입양센터에서 새 주인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아 결국 이 곳으로 오게 됐다.
녀석도 자신의 새 보금자리가 생긴 것이 기쁜지 동물구조차량에서 내리자마자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보은 동물보호교육센터'는 지난 2007년 4월 문을 열었다.
재단법인
한국동물보호협회(KAPS,
www.koreananimals.or.kr)가 제대로 된 동물보호소를 짓기로 하고, 야산 1만평을 사들여 이 가운데 1700평을 개발해
400평짜리 동물보호소와 교육센터를 숲 속에 지은 것이다.
재원은 협회 금선란(65) 회장의 사비와 7000여 회원들의 기부금,
IFAW(국제동물복지기금), RSPCA(영국동물학대방지협회) 등 해외동물보호단체의 지원금으로 충당됐다.
요즘도 주말이면 외국인들을
비롯해, 학생과 가족단위의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찾아와 목욕이나 미용, 산책 등을 통해 동물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금선란 회장과
함께 보호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보호소에는 현재 버려진 개 70여 마리와 고양이 30여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1층은 진돗개와
허스키, 말라뮤트로 등 덩치가 큰 개들의 보금자리다. 3~5평 크기의 방이 모두 14개로 한 방에 4~5마리씩 살고 있다. 각 방마다 개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큼지막한 마당이 딸려있다.
개들이 금 회장을 보자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한다. 금
회장도 이름을 부르며 손으로 개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성이야, 동곡아~ 요즘 밥 잘 먹고 있나. 아이고 예쁜 내 새끼들~"
◈
캐나다인이 전남 홍릉에서 구해 낸 '홍이'
하지만 전남 영광군 홍릉읍의 한 시골농장에서 구조해 왔다는 '홍이'라는 녀석은
경계를 풀지 않고 유독 사납게 짖어댄다. 낯선 남자의 출현 때문이다.
금 회장이 홍이를 구출해 낸 사연을
설명한다.
"2003년 7월, 홍릉에서 초등학교 영어교사를 하던 캐나다인 '제니퍼' 씨가 홍이의 처참한 사진과 함께 구조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협회로 보내왔어요. 한 시골농장에서 쇠사슬로 묶여있던 홍이는 오랫동안 굶어 피골이 상접했고, 서있기 조차 힘겨워 보였습니다. 아마
농장직원들이 식용으로 쓰기 위해 묶어놓았던 것 같아요. 벌써 7년 전의 일이지만 홍이는 아직도 '사람'에게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2층에는 몸집이 작은 개들과 고양이들의 방 24개가 양쪽으로 쭉 이어져 있다. 문을 열고 고양이 방으로 들어갔다.
천정에는 건물 옥상에 마련된 고양이 놀이터로 나가는 구멍이 뚫렸고, 바닥부터 나무사다리로 연결돼 있다.
방바닥에 쭉 늘어져 누어있던
녀석들이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더니 금 회장 품으로 얼굴을 비비며 파고든다.
금
회장은 이번에도 고양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준다.
"철이야, 다롱아, 시내야, 뚱이야, 삼순아, 영미야~"
신기했다. 어떻게 그 많은 개와 고양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해내는지 말이다.
"이 아이들 이름은 대부분 저와 협회
직원들이 지었어요. 주로 입소시킨 사람의 성명이나 구조된 지역의 지명을 따 이름을 짓죠. 아까 본 '홍이'는 '홍릉'에서 구출했기 때문에 앞
글자인 '홍'을 따와 이름을 지었어요."
금선란 회장이 동물보호 활동가로 변신한 지는 올해로 25년째다.
금 회장은
지난 82년 남편의 약국에서 쥐를 잡을 고양이를 사러갔다가 피부병에 걸려 하수구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데려오면서 유기동물과 첫 인연을
맺었다.
86년부터는 생명을 지닌 동물을 데리고 놀다 병들면 고장 난 장난감처럼 버리는 인간의 '이기심'에 화가 나, 유기동물들을
집으로 직접 데려와 보살폈다.
2004년에는 '버려진 동물들의 이야기'라는 책도 냈다.
"동물들도 말만 못할 뿐이지
사람처럼 즐거움과 반가움, 외로움, 질투, 공포 등 모든 감정이 그대로 살아있어요. 이런 동물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생명사랑'이며 우리
스스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첫 출발입니다."
◈ "유기견을 돌보며 오히려 많은 걸 배워요"
2층
사료창고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개 2마리의 털과 발톱을 깎으면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황금숙(46. 대전시 둔산동) 씨는
지난 4년 간 미용봉사를 한 유기견이 1000마리가 넘는 베테랑 미용사다.
"포동아~ 부탁한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라며 달래기도
했다가, "너 이 녀석 정말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나한테 혼 좀 나볼래!"하며 윽박을 지르는 모습이 마치 친자식을 대하는
듯하다.
충남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임백란(41·대전시 대흥동) 씨는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유기견을
25마리나 기르고 있다. 사료비만 한 달에 40만 원 이상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녀는 유기견을 돌보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직업상 병원에서 환자의 임종을 많이 지켜봤어요. 죽음을 앞둔 대부분의 환자들은 마지막까지도 자기가 아프다는 사실을 가족과
의료진이 알아주기 바라며 훨씬 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죠. 절망에도 잘 빠지고요. 하지만 개들은 달라요. 개들은 죽을 때가 되면 주인이 먹이를
줘도 스스로 거부해요. 정직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거예요. 개들은 죽음을 단 몇 시간 앞두고도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들고, 주인이
부르면 사력을 다해 걸어와요. 그 모습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개들은 한 번 맺은 인연에 대해 마지막까지도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주죠."
요즘 다음 아고라에서는 자원봉사자 전병숙(58·대전시 탄방동) 씨의 제안으로 '유기견과 유기묘들에게 따스한 겨울을 선물하세요'라는
제목으로 모금 청원이 한창이다.
보은 동물보호소는 해발 300미터의 산 속에 위치해 무척 춥지만, 전압이 낮아 동물들을 위해 온풍기
한 대를 켜도 자주 꺼져버린다고 한다.
협회는 겨울이 오기 전에 전압을 올리는 전기공사를 마치고 온풍기도 한 대 더 구입하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걱정이다.
현재 인터넷을 통해 한국동물보호협회에 가입한 회원은 1만 명에 달하지만, 금전적으로 매월 정기후원을
하고 있는 회원은 200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전병숙 씨는 "동물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에 동참에 주시면 버림받고
학대받아 보은 동물보호소에 온 유기견과 유기묘들이 지난해 겨울처럼 혹독한 추위에 벌벌 떠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금선란회장과 자원봉사자들이 보은 동물보호소를 떠나려고 길을 나서자, 1층 마당에 있던 개들이 갑자기 울부짖으며 울타리를
딛고 일어선다. 가련하고 애처로운 눈빛. 개들이 눈으로 애원하고 있었다.
"가지 말라"고, "우리 곁에 조금 더 있어 달라"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