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조선일보에 주목할 만한 기사가 나와서 옮겨 봅니다.
안심되고 기운나는 내용인것 같아서요.
기사 가운데 발굴 뼈사진이 있고 그밑의 설명에
'2000여년전 사람과 함께 묻힌 늑도 개 유골. 당시
늑도 섬마을 사람들은 뻐가 부러져 절룩거리는 개를
잡아 먹지 않고 잘 기른 뒤 죽으면 무덤을 함께 쓸 정도로
개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사에는,
개를 누구보다도 '사랑'했기에 무덤 자리도 함께 썼던
2000년전 섬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동아대 박물관이 발굴한 경남 사천시 늑도유적의 '2000년전
공동묘지'에서 개 유골 27마리분이 발굴돼 화제다. 주인을
따라 개를 순장시킨 것인지 아니면 죽은 개를 사람과 같은
묘역에 묻은 것인지,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등을 놓고 논쟁도 한창이다.
이동주 동아대교수는 '지난 2000년 발굴했던 늑도유적의
패총에서 인골 26명분과 개 유골이 나와 최근 들어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며 '인골과 개 뼈가 나온 곳은 40X30m 크기의
공동 묘역'이라고 밝혔다. 이들 개는 사람 바로 옆에 묻힌
경우도 있지만, 인골과 7-8m 이상 거리를 두고 묻힌 경우도 있다.
잉카나 마야 문명 등에서는 자신이 기르던 개가 죽으면
천등으로 두른뒤 묻어, 훗날 '개 미라'로 발굴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고대에 사람과 개가
함께 묻힌 유적이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 뼈 분석은 고대 동물 뼈 전문가인 미야자키 다이지 일본
오사카부 매장문화재 센터 연구원이 맡았다. 분석 결과,
- 죽기 직전에 가해진 외상이나, 뼈를 발라내기 위한
칼자국이 전혀 없고
- 뻐가 부러진 뒤 자연 치료된 개도 5마리나 되며
- 등까지의 높이가 30cm 미만인 작은 개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또, 종은 4가지 이상인데, 성별이 확인된 15마리 모두 수컷이며
- 이빨의 마모 등을 볼때 어린 것도 많고
- 함께 묻힌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이거나 어린아이라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이를 통해 '당대 사람들은 개를 먹지 않았으며,
개 크기나 늑도가 좁은 섬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냥용이
아니라 애완용이었고,
장애견을 기를 정도로 개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는
추정이 나왔다.
미야자키씨는 개가 순장됐을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순장된 것이라면 사람 바로 옆에 묻어야 할 텐데 독립된 상태로
묻힌 개도 많다는 점에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천 늑도유적에서는 한사군의 하나였던 낙랑의 토기와
중국계 유물이 많이 나와, 이 지역이 낙랑 등 중국과 왜등을
연결하는 경제 요충지였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기사를 볼때,
우리 조상들이 개를 음식으로 먹지 않았다는 물증이
이렇게 확실하게 나오고 있는데 무지한 일부 학자들까지
우리의 전통 음식이라며 떠드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한심하며,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이면에 반드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함께 보고픈 마음에 올려 봤습니다.
2000년 전의 사람보다 더 못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하루 속히 개식용습관을 고치도록 정부는 노력하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