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ews.joins.com/opinion/200511/24/200511242102246971100010101012.html
[과학칼럼] 더 이상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
이웃 나라 일본 규슈 남단 이즈미시에는 매년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 월동하기 위해 아시아 동북부에서 한반도를 경유해 날아오는 1만2000여 마리의 국제적 보호 조류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무리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탐조가와 애조가가 방문하고 있다. 한 지역에 전 세계 생존개체 수의 대다수가 모여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의존하는 자연스럽지 않은 집단생활로 인해 만일의 경우 조류 인플루엔자(AI)와 같은 질병이라도 발생하면 순식간에 멸종할 수도 있다는 국내외 비난에 당혹스러운 일본 정부가 대책을 강구한 지도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대책이 없다.
원래의 월동지인 우리나라에 두루미류의 월동서식지를 복원해 주기를 일본에서 간절히 요청하고 있으나, 그나마 몇 안 되는 서식지조차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대구시 화원유원지는 1980년대 후반에 250여 마리의 흑두루미 월동지로 각광받았으나, 개발과 소득 증가를 위한 비닐하우스 증가로 매년 100여 마리의 흑두루미 무리가 상공을 배회하다가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고 있다. 이즈미에서는 사람들의 지척에서 유유히 먹이를 먹는 태연한 행동을 보이는 두루미들도 일본으로 가는 도중 우리나라에 머물 때는 사람들을 보고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겁을 먹고 날아갈 준비를 한다.
80년대 후반에는 서해안 지역 갯벌 매립 등의 대규모 간척사업의 영향으로 수만 년 동안 생활해 온 삶의 터전을 빼앗긴 세계적 희귀 조류 검은머리갈매기도 훨씬 열악한 환경이지만 안전한 서식지를 찾아 일본 규슈 지역 갯벌지대로 2000마리가 이주해 생활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일본 정부와 민간 단체에서는 검은머리갈매기의 국제적인 보호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학술적.경제적 가치를 지닌 생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모르는 우리네 실정과 너무나 다른 일본, 그들과의 차이가 과연 무엇일까?
반달가슴곰의 경우도 똑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100g의 웅담을 채취하기 위해 150㎏의 야생 반달곰의 생명을 가볍게 여긴 밀렵으로 멸종 위기의 벼랑 끝에 서 있는 단 2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야생 반달가슴곰의 종 복원과 생태계 보전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다. 반면 일본 본토 지역의 산림에는 1만5000여 마리나 되는 야생 반달곰이 서식하지만 지역적으로 소수의 곰 개체군의 절멸을 막고, 농작물 피해 방지를 위해 정부.지자체.시민보호단체의 협력이 활발하다. 일본 역시 멧돼지 증가와 산촌지역의 노령화와 자연림 감소로 농작물 피해가 급증하고 있지만, 야생동물의 삶과 존재가치를 이해하고 그들과의 공존을 위해 스스로 농작물 보호를 위한 전기펜스를 설치한다. 자구책이란 명목으로 법을 어겨 가며 올무를 놓는 일도 없다.
지난 8월과 11월, 북한에서 들여온 토종 반달곰 새끼 두 마리가 멧돼지 포획을 위해 불법으로 설치한 올무에 의해 지리산에서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야생동물에 의한 재산 피해만을 강조하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과 동정하는 여론에 의해 불법적 올무 설치가 마치 불가피한 정당 행위인 것처럼 허용돼서는 절대 안 된다. 도심에 길 잃고 들어온 멧돼지를 맹수로 여겨 사살하고, 삶터를 빼앗긴 야생동물들의 마지막 생존의 몸짓마저 거부하는 사회적 편견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다른 생명체의 생존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들의 내일도 희망이 없다.

한상훈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