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관람'은 동물의 '감금'
[인터뷰]황윤 야생동물 다큐감독
"어린이날이 되면 제일 붐비는 장소 중 하나가 동물원이지만, '교육용 볼거리'라 생각하는 부모 손을 잡고 간 어린이들이 정작 확인하는 게 뭔가.
철창 속에 갇힌 동물들의 힘없는 시선과 자기 몸을 물어뜯는 자해 행동이다.
아이들이 동물원에서 실제로 동물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 동물의 '진짜 모습'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는 전혀 없다. 쇼를 하는 동물들이 얼마나 인간에게 재롱을 피우고 귀여운지를 확인하고 잠시 스쳐지나갈 뿐이다.
인간에게는 순간의 '관람'이지만, 동물에게는 평생의 '감금'이다. 오히려 동물원은 아이들에게 '동물은 인간을 위해 얼마든지 갇혀도 되는 존재'라는 첫 인식을 만드는 공간일 수 있다. 여기에 무슨 동물과의 교감이 있고, 무슨 교육적 효과가 있나."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들의 비참한 삶과 죽음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별> (www.freechal.com/farewell2002)을 시작으로 멸종위기의 야생동물과 서식지 파괴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온 황윤(34)감독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동물원'을 '동물의 관점'에서 한번 볼 것을 권했다.
2005년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환경예술인 대상을 수상한 황윤 감독은 야생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화두로 다큐를 찍어왔다. 2001년 <작별>이후 2004년 한국에서 사라진 표범, 호랑이, 꽃사슴등의 흔적을 쫓아 두만강,백두산을 찾은 기록인 <침묵의 숲>을 만든 그녀는 현재 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는(Road Kill) 야생동물들에 관한 작품을 찍고 있다.
'탈출' 코끼리들의 너무도 '인간적인' 속죄 공연?
"사람들이 보통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면 단순히 소유해서 먹이를 주고 보살피는 걸로만 생각한다. 야생동물들이 본래 어떤 서식지에서 살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 관람객의 오락과 눈요기를 위주로 운영되는 동물원에서 이러한 애완화된 관계의 인간중심성은 극명히 드러난다."
지난 20일 '공원밖 탈출'로 유명해진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코끼리들은 9일만에 지난 29일부터 공연을 재개했다.
대공원의 위탁 공연사인 코끼리월드는 "코끼리들이 지난 번 소동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3일간 첫회에 한정해 '속죄' 무료 공연을 하겠다"며 "공연장 안과 트래킹 주변에 보호 펜스를 설치하고 안전잠금장치를 강화해 탈출을 원천봉쇄했다"고 밝혔다.
서울 어린이 대공원에서 이뤄지는 코끼리 공연. 공연은 보통 1회에 50분간 하루 3~5회에 걸쳐 이뤄진다(좌), 코끼리월드 관계자는 "우리 코끼리는 벌목용으로 라오스에서 개처럼 사육된 것"이라며 "아프리카산과 달리 온순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우). ⓒ프레시안
소동 당시에는 "코끼리들이 유원지로 이송된 뒤 특별한 적응기간도 없이무리하게 공연을 재개했다"는 지적과 함께 "코끼리들이 30m 떨어진 공연장에서 폭죽이 터지고 음악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기 코를 입에 넣고 물어뜯는 비정상적 행동을 하더라"는 한 시민의 목격담이 인터넷 공간에 퍼지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언론엔 여과 없이 '말썽 핀 코끼리들의 속죄 공연'으로 보도됐다.
공연사측은 "사고 당일날 공연은 없었으며, 코끼리는 의식적으로 '탈출'을 감행한 게 아니라, 비둘기 떼에 놀란 새끼 코끼리가 달리자 군집 특성이 있어 나머지도 같이 뛰쳐나간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황윤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나가긴 왜 나갔겠나. 나가고 싶으니깐 나간 거다. 사람들은 마치 있어야될 공간을 벗어난 야수처럼 말하지만 애초에 거기에 있는 것 자체가 비정상 아닌가. 수만년 초원을 이동하도록 진화해온 동물의 야성을 몇년간 발에 족쇄를 채운다고 그 본성이 사라지나. 말이 안된다.
코끼리는 정말로 넓은 서식지를 필요로 하고, 이동을 많이 한다. 이동시간이 며칠 심지어 몇주가 될 수도 있다. 계층사회를 이뤄 집단생활을 해야 편안함을 느끼고, 촉각, 청각, 미각, 시각등 모든 감각을 동원해 의사소통을 한다. 게다가 흙과 물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코끼리에게 비좁은 공간과 시멘트 바닥은 자체로 고통일 수밖에 없다."
화려한 '공연복'을 벗으니 코끼리 몸 곳곳에는 긁힌 자국 위로 파란색 약이 발라져있다. 동물원 관계자는 "트래킹을 위한 의자를 태우느라 생긴 것일 뿐"이라며 '보통 코끼리가 반항할 때마다 못등 뾰족한 것으로 찌르지 않냐'는 질문에 "코끼리는 우리의 상품인데, 그렇게 다루겠냐"며 부인했다(좌), 코끼리가 밤에 잠을 자는 '황량한' 숙소, 고무 재질의 바닥 곳곳에는 코끼리의 발목을 채우는 족쇄가 고정돼있다(우). ⓒ프레시안
황 감독은 <작별>을 찍을 때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2001년도에 '크레인'이라는 이름의 시베리아 새끼 호랑이가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났을 때, 많은 방송사들이 얼마나 귀엽고 장난꾸러기 호랑이인지에 초점을 맞춰 앞다투어 찍어갔다. 그러나 몇달 동안 다큐를 찍으며 지켜본 크레인은 근친 교배로 인해 눈도 안 좋고 몸도 허약한 데다 형제도 없이 홀로 갇혀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육사들이 어차피 야생으로 못갈 바에야 '구속감'에 익숙해져야 얘도 스트레스 덜 받아 오래 살고, 우리도 편하다며 태어나자마자 목에 개줄을 맸을 때, 얼마나 답답해하며 울어댔는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갇힌' 동물들의 '강박적' 자해
환경운동연합의 소모임인 '하호'(haho.kfem.or.kr)가 펴낸 동물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렇게 서식지와 유리돼 갇혀 있는 동물원의 동물들은 욕구불만과 권태로 인한 스트레스로 강박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자기의 구토물을 먹고 다시 토하거나(침팬지), 앞뒤좌우로 몸을 계속 흔들고(코끼리), 피부가 드러날 정도로 스스로의 털을 뽑고(타조), 벽을 핥거나 우리 철창을 씹는(기린) 등의 행위는 세계 어느 나라 동물원에서나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정형행동(Stereotypic Behavior)'이라는 설명이다.
개체수가 모자라 정상적인 무리 생활을 할 수 없는 침팬지가 혼자 시멘트 바닥 위에 축 늘어져있다(좌), 바닷물 사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고여있는 지하수에서 사는 잔점박이 물범은 배설물, 먹다 남은 먹이, 관람객이 던진 쓰레기로 썩어 들어가는 물 속에서 피부병을 앓거나 눈에 염증이 생겨 안구가 파열된다(우). ⓒ환경운동연합 소모임 하호
현재 한국의 동물원은 19세기 서구에서 자신의 식민지인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서 대량으로 포획한 동물들을 도시에 전시해 '자국민의 관람과 자연과학 발전을 도모했던' 초기 동물원의 형태와 거의 같다.
동물원의 원조(?)인 서구에서는 현재 '동물 학대' 비판과 '야생동물 멸종' 상황에 맞추어 스스로를 동물원(Zoo)이 아니라 종보존센터(Conservation Center)로 자리매김해 살아남으려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아무리 자연환경을 흉내내도 인공서식지는 번식에 필요한 기후, 서식지, 동물개체군 중 어떤 기준도 달성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안형 동물원은 시민들이 요구해야"
황 감독은 "저는 <작별>에서 동물원이 있어야 한다. 혹은 없어야 한다는 식의 단답형 결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결론이 가능하지 않은 현실 속에 살고 있고, 관객들이 손쉬운 해답에 마음을 놓기보다 이에 대한 대답을 적극적으로 같이 고민해보길 바랬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외국 동물원에서는 시멘트 바닥을 거두고 흙바닥을 깔고, 지푸라기 속에 건포도를 숨겨 침팬지가 찾아먹게 한다거나, 호랑이 우리에 향수를 뿌리거나 소도구를 바꿔 호기심을 유발하는 등의 방법으로 '탐색 거리'를 만들어주는 행동풍부화 프로그램(Enrich Program)이 동물원의 기본 요구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한 켠에서는 인간이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포획하며 멸종위기로 몰아가면서, 다른 한 켠에서는 많은 비용을 들여 '번식 프로젝트'과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당장 동물원을 없애지 않는다면 최대한 자연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고,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게 현 상태보다는 낫다."
황윤 감독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물원을 찾을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당부하기도 했다.
"'서식지 외 보존' 역할 말고도 21세기 동물원은 어린이들이 야생동물의 위기와 멸종, 생물다양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우고 돌아갈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야 합니다. 이런 일은 동물원 운영자들이 구태여 하지 않겠죠. 시민들이 요구해야 합니다. 도시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면서 야생을 '판매'하고 '소비'하려 했던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자연을 담기에 동물원이라는 그릇은 너무도 작습니다."
관련 링크 ( http://blog.naver.com/ecofilm )
최서영/기자
출처 - 프레시안